빛바랜 접경에서 6화 - 두 운명(2)
◇
교문은 개방 시간이 한참 지난 한밤중인데도 열려 있었다. 나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히 정문을 통과했다.
“후우.”
오감으로 약간의 변화를 느꼈다. 같은 학교의 풍경이지만 전혀 다른, 인위적인 가짜 공간에 발을 들였다.
운동장은 준비가 끝난 무대처럼 여러 조명이 밤에 가려진 인공 잔디를 밝혔다. 마치 이리로 오라는 것 같았다. 상대의 놀음에 일부러 응해주려고 운동장 한복판으로 갔다. 가면서 주위의 모든 것들을 경계했다.
이곳에는 아직 나뿐이었다.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약속 시각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
머리 위로 차가운 게 살포시 떨어져 따끔했다. 그것은 빗방울보다는 더 느긋하고 선명했다.
눈. 첫눈이었다. 한겨울을 알리는 새하얀 알맹이들이 하늘을 덮었다. 학교 주변을 감싼 검은 밤이 서서히 하얀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첫눈을 본 것이. 그때는 친구들과 일상 속에서 첫눈을 기념했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해졌다.혼자서 일상을 벗어나 맞이하는.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겨울의 진풍경이었다.
감상에 젖을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긴장한 게 훤히 보이네. 우리 세연이.”
그는 이제 막 도착했다는 듯 교문으로 들어왔다. 김재훈. 그가 날 호출했다. 이유는 불명. 메시지는 ‘밤 10시에 학교로 와.’ 단 두 마디만 적혀 있었다. 물론 이상했다. 그래도 나는 굳이 약속을 지켰다.
“내가 뭐 때문에 불렀는지….”
사실 그가 어떤 내용을 보냈든, 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도 난 제 발로 그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은 채 않고 힘차게 발을 밟았다. 동시에 거센 바람이 다리를 휘감았다. 그가 오기 전 미리 준비한 마법. 바람을 추진체로 스프링 발판에 튕겨 나가듯 바닥을 뛰어 순식간에 그와 거리를 줄였다. 손으로는 실체화 마법을 발현해 애용하는 붉은 검을 뽑아내자마자 그에게 휘둘렀다.
깡!
검을 가로막은 것은 방패. 그것도 내 검과 똑같은 붉은빛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로 착각할 정도로 새빨간 빛을 뿜어냈다.
“사람이 얘기하는데 다짜고짜 덤비는 건 아니잖니.”
“구역질 나는 선생 노릇이나 그만하시죠.”
“…그래.”
재훈은 다른 손에 쥔 무언가로 날 찔렀다. 나는 그보다 한발 앞서 물러났다. 그가 사용한 무기는 내가 쓴 검과 같은 형태를 한, 그러나 역시 진한 붉은색을 띠는 검이었다.
“우리 얘기를 좀 해볼까.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거든.”
그가 먼저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의 제안에는 찬성이었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로.
“그쪽도 우리 가문 사람이죠?”
그는 셔츠 안에 손을 집어넣어 목에 찬 것을 보여주었다. 은색 체인 끝에 빛나는 작은 눈동자. 내가 가진 목걸이와 같은 것이었다. 돌잔치 때 어머니가 그것을 선물해주며, 우리 가문 사람임을 밝히는 증표라고 가르쳐주었다.
재훈은 정정했다.
“너랑 같은 핏줄은 아니고. 네 부모님과 이래저래 많이 엮였었지.”
어젯밤, 내가 서재에서 발견한 것은 오래된 사진 몇 장이었다. 아마 연구를 기념하며 촬영했을 단체 사진에는 부모님 외에도 잘 아는 얼굴이 한 명,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의 재훈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아군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미심쩍었다. 근거는 없었다. 추측. 순전히 감에 불과했다. 내가 질문을 그치지 않은 이유는 그러했다.
“그럼 부모님 행방도 아시나요?”
재훈이 대답했다.
“잘 알지.”
뒤이은 한 마디는 순간, 내 귀를 의심케 했다.
“내가 죽였거든.”
머릿속 신경이 뚝, 하고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싹 사라졌다. 말문이 막혔다. 달아오르는 몸을 간신히 참았다.
“…왜.”
“그래. 죽기 전에 너도 알고 가는 게 편하겠지.”
이야기는 약 20년 전으로.
그는 내 아버지가 ‘재단’에 학생으로 몸담았던 시절 졸업까지 동고동락한 동기였다. 아버지는 졸업한 뒤 ‘재단’을 탈퇴하고 잠적을 감췄다. 그 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던 아버지가 수년 만에 그에게 전한 근황은 아내가 생겼다는 것과, 큰 프로젝트가 있으니 함께 하자는 제안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계승 받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우리 가문의 비보祕寶를 그에게 소개했다.
탄생. 만물의 시작. 세계를 포함해, 모든 것은 ‘탄생’의 법칙에 의해 창조되었다. ‘탄생’이 있어 다른 법칙들이 나타났고, 태초에 세계가 만들어졌고, 생명이 태어났다. 근원과도 같은 최초의 법칙. 내 조상은 ‘재단’에서 활동하면서 ‘법칙’의 존재를 발견했고, 그것을 탐냈다. 정작 자기가 그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그 굴레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그런 터무니없는 발상을 ‘재단’의 상층부는 당연히 용납하지 않았고, 조상은 스스로 ‘재단’을 나왔다. 그리고 그런 꿈같은 욕망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아 연구를 시작했다.
그 허상은 고조부, 증조부에 이어 아버지가 물려받았고, 놀랍게도 가능성을 자아냈다. 요약하자면 마법을 통해 ‘법칙’에 간섭할 수 있으며, 어쩌면 가문의 염원대로 ‘법칙’을 다루는 마법을 창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배운 실체화 마법도 연구를 진행하면서 만들어낸 산물 중 하나야. ‘탄생’의 법칙을 손에 넣는다면 생명을 창조하는 힘은 물론이고, 내 이론대로면 영생을 얻는 것도 가능하겠지.”
빠르면 수십 년. 늦더라도 살아있을 때까지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전망은 그러했다. 하지만 내 부모님, 정확히는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그 여자만 아니었어도. 네 아버지가 마음을 돌릴 일은 없었을 텐데.”
이렇게 방대한 힘을 가지게 되면 언젠가는 세상에 알려질 테고, 어떤 위험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 연구를 이만 중단하자는 어머니의 설득에 아버지는 고심 끝에 수긍했고, 그를 따르는 동료들도 이에 찬성했다.
그는 아니었다.
“내 몇 년을 투자해서 이룬 성과였어. 그걸 물거품으로 만들다니. 참, 어이가 없었지.”
그래서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것을 독차지하기로.
“재단에 연구에 관한 정보를 조금 흘리니 바로 윗선이 반응했지. 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쪽 사람에게 부탁해 담당 수사관으로 자원했어.”
그는 조금이라도 그 연구와 관련 있는 이들을 모조리 수배대상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고, 또 죽였다. 이 세상에서 그 연구를 자신만이 알게 될 때까지.
내 부모님은 그의 주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 있는 집에는 아무것도 없더군. 그럼 아마 네 집 어딘가에 숨겨놨겠지.”
그것이 있든 없든.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할 말은 끝났나요?”
고작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그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나는 도저히 용납하지 못했다.
달렸다. 그를 향해. 진정하기에는 진즉 글렀다. 몸속에 흐르는 에너지는 주체하지 못하고 거칠게 솟구치며 손바닥에 붉은 스파크를 연신 일으켰다.
“최대 사출!”
붉은 스파크는 의지에 따라 형상을 그렸다. 만들어낸 테두리 속에 손바닥을 통해 에너지가 가득 채워졌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태어난 그것은 이제껏 만든 검 중에 가장 거대하고 날카로운 칼날을 가진 붉은 대검이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는 그를 맹렬히 쫓아 있는 힘껏 검을 내질렀다.
“네 아버지가 싸우는 법은 하나도 안 가르쳐줬나 보구나.”
격차는 예상대로 아득했다. 칼날이 그에게 스치기는커녕 닿질 않았다. 그 차이를 잘 알면서. 실감하면서도 공격을 이어갔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승산이 없더라도, 그가 저지른 만행을 생각하면 도저히 물러설 수 없었다.
제발. 단 한 번만. 그에게 자그마한 생채기 하나라도 내고 싶었다.
“그릇은 나쁘지 않지만, 너무 물러 터졌어.”
한순간, 그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아.”
왼손, 왼팔의 감각이 한순간에 멀어졌다. 손바닥이 쥐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가 지나간 자리로 눈을 돌렸다.
새하얀 눈 속에. 시뻘건 피를 흩뿌리며.
왼팔이 단번에 내 몸에서 잘려나가, 힘없이 공중에 나가떨어졌다.
잘린 절단면으로 핏줄기가 흘러넘치며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전신에 휘몰아쳤다. 고통에 절로 신음을 토해냈다.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두 다리는 고통에 균형을 잃고 눈밭에 쓰러졌다. 심장박동은 헐떡이는 숨처럼 가빴다. 눈으로 더러워진 몸은 뜨거웠다. 몸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실체화 마법은 말이야. 네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런 것도 할 수 있단다.”
제정신을 가누기 힘든 와중에도 귓속으로 그의 말이 새어 들어왔다. 쓰러진 채로 힘겹게 시선을 그에게 향했다.
그가 날 가리킨 그것은.
새빨간 권총 한 자루였다.
탕!
방아쇠는 망설임 없이 당겨졌다.
“아아아아악!”
다리. 오른쪽 다리에 맞았다. 탄이 박힌 자리에 폭탄이 터지듯 통증이 폭발했다. 정신이 마구잡이로 흔드는 것처럼 사납게 요동쳤다.시야가 흐릿해졌다. 눈꺼풀이 감길 듯 말 듯. 관자놀이를 눈 바닥에 처박고서 정면을 응시했다. 이쪽으로 두 번째 탄환을 장전하는 그가 보였다. 팔다리에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죽는다.
후회는 없었다.
진작에 예견하고 있었던 결말. 그러나 결코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최악의 끝맺음이었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세상이 지워졌다. 익숙한 교정의 풍경도, 밤하늘을 메운 싸라기눈도, 나를 죽이려는 남자도. 모두 사라졌다.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아픔이 그치지 않았다. 왜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일까.
“…?”
눈을 떴다.
그리고 간신히 뒤바뀐 상황을 파악했다. 내 앞에 서 있는 이는 그가 아니었다. 익숙한 뒷모습. 그토록 작고 왜소한 체구가 지금은 커다랗게 보였다.
이것으로 세 번째. 기껏 다 갚았는데. 또다시 빚을 지게 생겼다.
◆
“준아. 이건 약속이랑 다른데.”
“….”
조금 전으로 돌아가서.
세연을 포기할지, ‘나’를 포기할지. 즉답을 원하는 그의 대답에 나는 끝내 전자를 선택했다. 무슨 까닭이었는지. 지금껏 ‘나’를 죽이려고 그토록 애썼으면서. 막상 절벽 앞에 서니 무서워 물러서는 아이처럼. 나는 도망쳤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세연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불행한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났다는 단 하나의 억울한 천분天分 때문에. 그녀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와 ‘재단’의 억지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겠다고, 세연은 그렇게 다짐했다.
그녀를 앞에 두고서. 나도 따라서 마음을 다졌다. 세연을 살리고, 나 또한 살아남겠다. 둘 다 포기하지 않겠다.
나는 처음으로 운명에 맞서기로 했다.
“말한 대로 넌 내버려뒀잖니.”
“제발 넘어가 주시면 안 될까요?”
탕!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귀에 이명이 울렸다. 붉은 총구를 겨눈 방향은 정확히 내 이마였다. 일부러 빗맞힌 것이 아니었다.
“비켜. 시간 없어.”
“…죄송해요.”
쓰러져 있는 세연에게 재훈이 오지 못하도록 가로막듯 양팔을 옆으로 쫙 폈다. 그는 날 죽이지 못한다. 기회를 봐서 그녀를 데리고 여기를 빠져나간다.
“…좋아. 어차피 걔를 처리하고 나면 너도 잡을까 했는데. 잘 됐어.”
그 판단이 큰 오산이었음을. 당하고 나서 체감했다.
“커헉.”
재훈은 단숨에 내 앞으로 바싹 붙었다. 주먹이 내 배에 꽂혔다. 통증이 복부를 뒤흔들었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마른 침을 뱉어내며 무릎을 꿇었다.
대체. 왜. 원래라면 빗나가야 하는데.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 그가 설명했다.
“네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넌 무적이 아니야. 그냥 언제든 죽을 위험이 찾아오고, 죽음을 피할 뿐이지.”
재훈은 주저앉은 내게 손바닥을 펼쳤다.
“묶어라.”
그 말에 바닥에 쌓인 눈을 헤치고 붉은 촉수들이 튀어나와 한꺼번에 내 몸을 묶었다.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아주 단단하게 조여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네가 죽지 않을 만큼 공격을 조절하면 돼. 아니면 이렇게 움직임을 봉하는 속박 마법을 써도 되고.”
생각지도 못한 결점이었다.
“그럼, 마무리해볼까.”
“!”
재훈은 세연에게 관심을 돌렸다. 나는 전력을 다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내 힘으로는 무리였다.
“안 돼….”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살려주세요. 한 번만. 제발.
울먹였다. 떼를 쓰는 아이처럼 그에게 호소했다. 살려달라고,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녀의 머리로 총구가 향했다.
내 절규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살포시 눌렀다.
거기까지였다.
내 의식은 단말마 같은 총성과 함께 세상과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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